JIMMY STRAIN
; a Musician and Actor posing as an Artist


훌륭한 기자는 두 시간의 횡설수설을 인터뷰로 승화시킨다

생애 첫 인터뷰는 운좋게도 평상시 신뢰하던 매체의 훌륭한 기자와 이뤄졌다.
뛰어난 경청의 기술을 가진 분과 마주했음에도 처음 해보는 인터뷰인데다
초면인 분과의 대화이니 두 시간 가까이 답변을 했음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인터뷰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아쉬움도 덜어내고, 지속적으로 ‘불친절해도 너무 불친절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공식 웹사이트 상의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한) 소개와 자료를 보충하고자 이 글을 적는다.
이 글이 ’지미 스트레인’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분들께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고 난 뒤에, 나와 관련하여 도리어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든가,
처음에 이곳으로 그들을 이끌었던 주제(이를 테면, 호기심?)와 무관한
더 큰 질문을 갖게 된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것이 무례한 행동인 경우도 있지만, 새로운 질문을 이끌어내는 답변은 좋은 것이며,
답변자와 상관없이 질문자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을 하게 하는 답변은 가장 좋은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부디 이 글을 재밌게 읽으시길 바란다.

[ 1 ] [ 2 ] [ 3 ] [ 4 ] [ Map to Get Lost ]

1. [ 당신이 음악을 만드는 이유는 순전히 자기 만족을 위함인가?
공연도 안 하고 음반판매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는 걸 보니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취미로 음악을 하는 것 아닌가? ]

종종 듣는 이야기인데, 음악, 문학, 미술 등 예술이나 창작 분야에 몸담고 있거나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이렇게 추정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분야에 종사하거나 전문가일수록 소위 창작 혹은 예술이란 것들을 통해 먹고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통사람들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 창작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

게다가 소위 비대중적인/비상업적인 - 먹고살기 어려운 스타일의 음악을 해왔다는 것,
다른 음악가들이 흔히 하는 방식이나 일반적인(혹은 전통적인)경로를 따르지 않고
늘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규모가 큰 음반을 만들어온 것은 충분히 대중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음으로 이해되고
나아가 ’오만하다’는 평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로수가 보행자를 고려하여 자라지 않듯, 나 또한 그저 타고난 성격과 취향에 따라 작업하고 공표할 뿐,
일말의 우월감이나 사상적 강박, 정신적 결벽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잘 모르는 이들이 나를 돈 걱정할 일이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은 즐거울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약간 자랑스러워지는 일이다. 그 이유는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 나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의 이유가 결국 '자기만족'이며
그 '자기만족'이 '소득'으로 치환/대체될 수 없는 것일 때 비로소 인류로 하여금
생물학적/생활적 타성에서 벗어나 '빵만으로 살지 않는 삶'을 생각해보고
또 그것을 지향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정의'를 위해 투쟁하며 자기만족을 느낄 때
누군가는 '최고의 맛'을 추구하여 땀을 흘리는 것이 사람인데,
여기서 '부자가 되기 위해 정의를 추구하고 최고의 맛을 찾으'면,
그 때부터 '소득의 증가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정의’와 ‘최고의 맛’을 이끌게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의 짧은 경력에 대해 '너는 (먹고사는 일엔 관심없이)자기만족만 찾아온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소득의 증가'나 ‘명예’ 같은 것에 이끌리지 않고 순수한 사고와 행위를 하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즐겁고 고마울 수밖에 없다.


둘째, 나는 생활에서 얻은 체험과 철학/사상이 주종관계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힘들게 돈을 버는 사람의 창작물이 ‘고달픔’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채워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체험은 그것을 겪는 사람의 철학이나 사상과 상호협력 및 보완의 관계여야 이상적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소설을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작업을
현실에 대한 '대응'으로서 여겨본 적이 없다. 나의 호구지책과 '창작'행위는 완전히 구분되도록 애쓴다.

내가 짐 나르는 일꾼으로 고용되면 나의 정체는 ‘짐꾼 @씨’가 된다.
짐꾼으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어떤 짐꾼인지) ‘창작자/예술가’로서 나를 알고 있는 이들이
알거나 헤아려야 할 필요는 없다. 수면 아래가 얼마나 진흙탕이든 간에 중요한 것 수면 위에 핀 연꽃 아닌가.
적어도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면 제3자가 고려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활이나 개인사를 빌미로 작가나 작품을 폄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멋진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이혼경력이라든가, 채무관계, 가정사 등은 작품의 뛰어남과 별개임에도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이상의 정체를 알 필요없는 사람들이 작가와 작품에 대해 불필요하고 부당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쏟을 때가 있다. 내 생각엔 그런 불필요하고 부당한 관심과 노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타인의 뒷얘기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버린’ 그들이다.


셋째,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철학적 사상적 감성적 지향을 이격시킬수록,
현실 속에서 추상을, 타성 속에서 전위를, 퇴보 속에서 진보를 추구할 수 있다.
(여담으로, 나는 감정과 감성을 구분하기 위해 남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애쓴다.
being emotional과 being sensitive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고, 나는 sensitivity에 집중한다.)

먹고사는 문제와 지향점들을 떨어뜨려 놓아야
'현실의 반영'이 아닌 '숙성되고 정제된 뒤 다듬어진' 체득과 성찰을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사연'에 남이 관심을 갖거나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면 아래에 어떤 물고기가 있는지 일일이 알아야 바다가 아름다운 건 아니듯이.

따라서 내가 만약 '진지한 취미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면,
무지와 막연함 없이 스스로의 기준을 충족하며 꾸준히 지향점을 향해 왔다는 뜻이다.
내가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니 기분이 좋은 이야기고,
녹음 전에 내 손에 오물이 묻었다 해도 내 음악에서 똥냄새가 나는 일만 없으면 그만이니까.


2. [ 음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 노력하지 않는 것 같다 ]

작품/창작물을 통해 대중(청취자/시청자/구매자)과 소통하는 것은
대중이 원하는 것/듣고 싶어하는 것/듣기 편하거나 이해하기 편한 것을 만드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어 창작하는 것을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를 만드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도 많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 손을 떠난 물건의 가치와 의미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손에 달려있으며,
방송, 공연 등을 통해 대중과 만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 곧 ‘소통’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창작 행위를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그보단 작품 자체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에
더 심혈을 기울이는 이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만드는 사람이 오롯이 후자를 추구했는데,
그 결과물이 전자와 맞아 떨어진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매우 드물고
그것을 처음부터 기대하거나 기획하고 일을 하긴 어렵다, 적어도 나에겐.

자연히 나는 작품이 누구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 얼마나 팔릴 지 보다는
본래 계획하고 꿈꾸었던 이상과의 오차를 줄이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다.
대중은 결국 내가 내놓고 그들이 만나서 겪은 작품을 매개/빌미로 삼아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 반응은 격렬한 공감이나 혹평일 수도 있고,
미지근한 실망이나 차가운 냉소일 수도 있다.
공표할 물건을 만드는 것이 오롯이 나의 몫이듯, 내가 만든 물건에 대한 반응은 완전히 대중의 몫이다.
물건을 만들어 내놓은 사람으로서 시간을 할애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최소한의 도리이지만,
그러나 타인들의 반응에 '영향을 받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을 받고나면 더 칭찬을 받기 위해 칭찬 받았던 행동을 답습하고 반복하려 하고,
비판과 냉소를 일으킨 자신의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려 애쓴다.
자신이 설정한 먼 곳의 목표에 가장 효율적으로 도달하는 방법은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휘청거리지 않고 자신의 방식과 속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서, 공표보다 나은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음악을 만들고 음반이란 물건으로 내놓고 누군가가 그것을 체험하고 반응하는 것.
이 일련의 행위가 곧 소통이다.
그 음악을 실연하고 또 공연 중간중간에 객석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것의 확장이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다.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할 것이다.

영화배우를 직접 만나보지 않거나 소설가나 시인과 대화를 해본적이 없다는 이유로
영화나 소설, 시가 나에게 준 감동이나 영향이 줄어든 적은 없다.
또한 영화배우들의 무대인사를 보았다고 해서 영화에 더 감동했던 적도 없다.
무대인사를 한 것은 영화배우라는 유명인이지 작중 인물이 아니고, 날 감동시킨 건 영화속 인물이니까.

그래서 공표를 위해 완성된 물건은 별도의 확장 작업없이도 그 자체로 의미를 갖고
충분한 소통의 소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공표한 상태 그대로 소통을 일으킬 수 없는 물건을 만드는 것은 일종의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매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만들고 신중하게 공표해왔다.


3. [ 공표란 무엇인가 ]

무엇을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 과거-현재-미래를 나누는 기준은 공표다.
이미 공표한 것은 과거이고, 공표를 위해 만들고 있는 것이 현재이며,
언젠가 공표하겠지만 작업 중이 아닌 것은 미래다.
모든 활동은 공표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공표하지 않은 작품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은 계획이나
아이디어와 마찬가지로 ‘없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공표는 내가 만든 물건을 사유물(일반적으로 만든이에게 귀속)에서 공공물로 바꾸는 행위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모차르트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모두의 것이다.
그것을 모차르트가 만들었다는 것은 정보이며, 만든이에게 음악을 만들어준 값을 치르는 경제행위를 위해
법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행위를 수월하게 하기 위하여 제도가 존재한다.
이 법과 제도를 위해 그 정보를 주축으로 ‘저작권’이 형성된다.

저작권은 음악가에게 있으나 여전히 그의 음악과 그것이 주는 즐거움은 청취자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설, 미술 등에 있어서도 즐거움과 감동은 모두 그것을 즐기고 누리는 자의 것이다.
그것을 통해 수익이 발생할 때엔 당연히 그것을 만든이에게 일정 정도가 돌아가야 하고,
만든이가 앞으로도 행위를 계속할 수 있도록 소득이 발생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작품을 통한 소득/수익의 발생에 대한 것이지
작품 자체나 그것이 정신적/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나의 음악은 그것을 듣는 사람들, 의미부여를 하는 청중과 시간을 할애해준 이들의 소유다.

내 음악이 담긴 물건이 팔린다면 나는 약간의 이득을 얻고 그것을 기반으로 (일단 월세를 내고 빚을 갚은 다음)
다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액수에 상관없이 약간이라도 소득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정신적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한 번이라도 공표한 물건을 통해 돈을 벌어 보면, 예컨대 좌판이라도 펼쳐놓고 내가 만든 물건을 팔아 보면

'내 물건을 팔아 돈을 벌었다'라는 단순한 사실이
'얼마를 벌었느냐'는 의구심과 불안도 압도하는 크나큰 응원과 격려가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나의 음악이 이용된 타인의 물건과 행위에서 소득이 발생한다면,
법령이 정한 기준이나 계약에 따라 나도 그 이득의 일부를 나누어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음악의 소유권이 나에게 있다는 뜻이 아니다.


공표는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것이고, 나와 나의 저작물 사이의 '나만 바라봐'같은 관계를 청산한다는 뜻이다.
공표된 모든 창작물은 만드는 과정 동안에만 진실로 내 것일 수 있다.
내놓은 이상, 내 것이 아니며 나의 과거에 불과하다.


공표해 관한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내겐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한 번 공표한 것은 거의 다시 듣지 않는다.
둘째, 나의 창작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따라서 비판으로부터 그것을 보호하거나 칭찬을 계기로 답습하지 않는다.
셋째, 공표한 작품을 만드는 동안 발생한 자료와 완성된 물건 등을 모두 정리하여 치워놓는다.
(시야에 ‘나의 과거’가 들어오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4. [ 왜 공연을 하지 않는가 ] - 다른 페이지에서도 다루었지만 어쨌든.

공연을 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현실적인 이유로 밴드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든 공연을 할 수 있는 고정멤버로 이뤄진 밴드가 없고,
또 필요시 기용할 수 있는 개인적으로 친분있는 연주자도 거의 없다.
따라서 공연 제의가 와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음반을 만드는 것에만 치중해온 탓이다.

두번째는 (앞서 언급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유로 인해
내가 이미 발표한 나의 음악들을 과거라 느끼기 때문이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궁극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완결하고 온전히 담는 것, 즉,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표하는 순간 만든 사람은 그것을 딛고, 그것만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 한 편, 소설책 한 권, 그림 한 폭, 음반 한 장만큼 그것을 만든이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연을 하는 것이 퇴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미 딛고 지나온 돌 위에 다시 발을 딛고 서서 전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을 뿐이다.
재차 강조하건대 나는 그것이 결코 나쁜 일이라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연하는 사람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보는 즐거움을 겪어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게는 그것이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비하여 '덜 매력적'이란 이야기다.

마지막 이유는 내가 음악을 즐겨온 방식 때문이다.
음반을 모으고 매일 음악을 듣던 시절, 나는 주로 독서실이나 내 방에서 음악을 듣곤 했다.
홍대의 인디 밴드들에 관심이 있었지만, 몇몇 큰 공연을 제외하곤 공연장에 간 적이 없었다.
라이브 공연으로 음악을 듣는 것은 주로 클래식이었고, 록밴드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보러 가게 되었다.
즉, 음악을 즐기는 방식을 크게 (음반이나 라디오를 통한)청취와 (공연)관람으로 구분한다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극단적으로 청취에 치우친 편이다.

한창 여러 종류의 음악을 찾아 듣던 시절만 해도, 관심이 있던 해외의 유명 밴드들은
한국에서 공연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또 공연을 할 때에도 주로 일본에서 공연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잠깐 들르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두고 당시에 ‘한국에서 설거지하고 간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우드스탁을 직접 보지 못하고 비디오로만 보았다든가, 유명 밴드가 한국에서 라이브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음악을 안 좋아하게 되거나, 또 전반적으로 음악을 덜 듣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런 취향은 음악에 심취해있던 친구들에게도 있었다.
좋아하는 밴드의 라이브를 보는 것은 고사하고 라이브 비디오를 틀어주던
홍대의 작은 클럽에 가는 일도 드물던 때, 오히려 만드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훨씬 다양한 음악을 깊이 들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새로 만들어지는 음악도 비슷비슷한 것이 많고,
듣는 사람들도 비슷비슷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창법이나 편곡, 보컬의 음색과 음악의 전반적인 색채가 음악가의 인지도와 상관없이
다 비슷해진 것 같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어쨌든 늘 4~5개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으로서 연주력은 물론,
인격적/인간적으로도 정이 가는 좋은 사람들을 찾아 그들과 연습할 시간과 공간을 관리 조정하는 일은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다. 타인과 함께 진행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공연을 하고 싶다. 나는 언제나 좋은 아이디어보다 좋은 사람들에 목마르다.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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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STRAIN's 'Map to Get Lost'



Version History>

_______: Born
Age _5: Felt suicidal for the first time
Age 20: Felt suicidal for the last time
00 2004: Decided to make music

12 2006: Won the Korea Entertainment Producers Association Award at Seoul Artvarsity Performing Artists' Festival
04 2007: Released first EP, 'A Long Awaited Mistake'
05 ____: Performs at 'Hi! Seoul Festival' with original pieces
04 2008: Released first regular album, 'Emotion Frequency'
03 2009: Re-mastered 'Emotion Frequency'
09 ____: Released second regular album, 'FUTURE'
12 ____: Participated in Damitow Records'(NY) production of a charity compilation record for the Rape, Abuse and Incest National Network (RAINN) in the U.S.
08 2010: Charity album for 'RAINN' released on iTunes
_______: Received 'Honorable Mention' for four songs at the 17th Billboard World Song Contest
10 ____: Released third regular album, 'Human to Human'
12 ____: KOCCA Chairman's Award Winner at the 2010 Korean Contents Award
01 2012: Released first digital EP 'Yeo-Chin:Honey, can't we just be friends?'
05 ____: Released 'Rhapsody Of Cho', a BGM for the web cartoon 'It's cheap! Cheolima-Mart'
09 ____: Released '1+1', a BGM for the web cartoon 'It's cheap! Cheolima-Mart'
12 ____: Original OST for 'It's cheap! Cheolima-Mart' released
_______: Released 'Let the right one win,' to encourage voting for the 18th presidential election
08 2016: Released 4th studio album, 'JIMMY STRAIN'. 4 hours of all new 60 original songs in 6 CDs and Vinyl discs.
09 2016: Still busy and crazy, wasting and looking for something to waste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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